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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임진왜란 노량해전 핵심 요약

by 노스타우너 2024.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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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노량해전은 조선의 명장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주도한 중요한 해전 중 하나입니다. 이 해전은 1592년 12월 16일 (음력 1598년 11월 19일)부터 발생했으며, 이순신의 작전 능력과 전략적 지혜로 인해 왜군에게 큰 손실을 입히며 전투에서 승리와 함께 전쟁을 종식시켰으나, 이순신에게는 마지막 해전이 되었습니다.

 

 

요약 통계

 

구분 조선 수군 일본 수군
병력 병사 6천~7천명
판옥선 4~60척
협선+방패선 80~180척

병사 2만2천~2만3천명
안택선+세키부네 약 350척
피해 병사 150 ~300 명 전사
전선 0~4척 손실
(명나라 병사 200~350명 전사
전선 1~2척 손실)
시마즈 군사 절반 사살(최소)
혹은 1만3천명 사살
전선 200척 침목
전선 100척 나포
결과 조명 연합 수군의 승리
조선 수구 최고 지휘관 이순신 전사
조선인포로 수백명 구출
일본 수군 극소수 및 수뇌부 탈출
 
영향 일진왜란 및 정유재란 종결

 

 

 

주요 특징

 

노량해전에 관한 주요한 특징과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판옥선의 활약: 노량해전에서 패한 일본군들의 평가로는  '명나라와 조선의 병선이 비록 크기는 하지만 빠르기가 나는 용과 같고 도 가가이 접근하여도 붙잡고 올라가기가 어려우며 대포도 무서워 수전하기가 어려웠다'라고 전해집니다. 수군의 전선은 작아 큰 판옥선이 좁은 포구에서 활동하기 불편했던 단점을 보완하여 전투에서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술적 배치: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다양한 전술적 배치를 통해 왜군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바람과 해류의 방향,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전략적으로 우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노량해전에서도 지리적 위치뿐 아니라, 겨울의 북서풍을 이용해 화공전을 펼치는데 유리한 계절적 상황까지 고려하여, 포화 화살을 쏘지 않고 불뭉치 만을 적선에 던져 2백여 척을 소각시켰습니다.

 

조명 연합작전의 성공: 이순신의 능란한 외교술과 리더십은 명나라 장수 진린의 성품이 거만하고 포악하다는 사실을 사전에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외교술을 발휘해,  조명 연합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습니다. 후에 진린은 수시고 군중의 대소사에 대하여 자문을 구했고, 명나라로 가서 벼슬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으며, 선조에게 글을 올려 극찬을 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적의 대량 손실: 노량해전은 왜군에게 큰 손실을 입히며 전투의 흐름을 조선의 방향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왜군 함선이 파괴되었고, 왜군은 큰 혼란과 패배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순신 최대, 최후의 해전: 조선왕조실록에서 이덕형은 :혈전을 하던 중 이순신이 몸소 왜적에게 활을 쏘다가 왜적의 탄환에 가슴을 맞아"라고 보고했다. 류성룡의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라"는 말을 한 뒤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맺음

 

결론적으로, 임진왜란 전체의 전투 중 가장 큰 전과를 거둔 해전이었던 노량해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였고, 이 노량해전을 끝으로 임진왜란 7년의 전쟁이 종료되었습니다. 일본국에게 대승을 거둔 이 대전으로 주변국들에게 조선 수군의 우수성이 크게 각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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